달라도 너무 다른 독일의 직장 문화

독일이 이런 줄 알아서 여기 온 건 아니었다

이 나라가 노동자가 살기에 좋은 나라라는 건 살면서 알게 됐다. 물론 어디가 더 살기 좋다, 나쁘다는 상대적인 것이라 분명 여기보다 나은 곳도 있을 것이고, 나와는 다르게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한국과 멕시코식 사고방식에 익숙한 나와 띤군에게는 독일의 직장 문화와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어안이 벙벙해질 만큼 인상적이었다. 고백하건대 적응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몇 년이 지나니 이제야 조금씩 이곳 방식을 터득해간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지난 4년간 우리가 이곳에서 살고 일하며 발견한 우리와는 조금 다른 독일의 일 문화에 대해 소개하겠다.

연 30일의 휴가

독일에서 주 5일을 근무하는 회사원은 최소 연 20일의 휴가를 받는다. 물론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하고 평일만 세어서 20일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독일 회사들은 20일 이상을 보상한다. 띤군은 이제까지 다니던 회사 세 곳에서 모두 30일을 받았고, 나는 재작년에 다니던 직원 50명 수준의 작은 회사에서 26일을 받았다. 법정 최소 휴일로 보면 프랑스나 핀란드(각 25일)에는 못 미치지만 독일에서는 회사들이 관례상 법정 휴가일 이상을 주기 때문에 회사원이 실제로 누리는 휴일수는 훨씬 많다. 2020년 독일 회사원의 평균 휴가 일수는 28.2일이었다. 
회사들이 자진해서 법정 휴일수 이상을 보상하는 게 참 인상적이다. 노동자의 권리가 인정받고 보호되는 전체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회사들도 자기 나름의 몫을 하려는 게 아닐까 싶다. 

들으면 놀라실 수 있겠지만 멕시코에서는 연차가 단 6일뿐이다. 그나마도 입사 2년 차가 되어야지만 받을 수 있다. 그 이후로는 해가 지날 때마다 이틀의 휴가를 더 받아 최대 12일의 휴가를 받을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휴가를 쓰는 것만큼은 눈치 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그건 독일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여기서는 한 달을 통째로 쉬어도 뭐라 하는 법이 없다. 물론 휴가 계획은 미리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한국과 또 다른 점은 연초에 일 년 치 휴가 계획을 모두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일 년 전에 이미 휴가행 항공권과 호텔 예약을 끝마치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여행사 투어 상품도 6개월~1년을 앞서 판매하는 게 많고, 그런 상품 중에 저렴한 것들이 많다. 
독일의 시간은 꼭 달리(Dalí)의 축 늘어진 시계처럼 느릿느릿 흐른다. 아직도 편지를 주고받는 일이 많아 서류를 며칠씩 기다리기도 하고, 병원과 관공서 모두 예약제라 일주일에서 길게는 몇 달 전에 예약을 마쳐야 한다. 회사를 그만둘 때도 3~6개월 전에 통보를 해야 하는데, 퇴사가 결정되고 나서도 회사를 수개월간 더 다녀야 하는 상황이 우리에겐 당혹스럽지만 독일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일이다.

초현실주의 예술가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지속
초현실주의 예술가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지속>

독일의 예약제 얘기를 하니 알쓸신잡에서 유시민 작가가 했던 농담이 떠오른다. 농담인즉슨, 독일에서 농담을 하려면 하루 전에 서면으로 ‘농담 계획’을 통보해야 한다는 거다. 그래야 사람들이 하루 동안 찬찬히 농담 들을 준비를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하!

각국 법정 최소 휴가 일수 보기 (출처: 위키피디아)

아프면 쉰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가 한국에서는 당연하지 않아서 슬프다. 독일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상사가 치과 예약이 있다고 미팅 중간에 나가버려서 놀란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니 병원이 미팅에서 탈출하기 위한 핑계였을 수도 있겠다 싶다. 게으른 상사는 아니었으니 나갈만해서 나갔겠거니 하는데, 요지는 그게 아니라, 독일에서는 아프면 쉴 수 있다는 점이다. 최대 3일까지는 의사 처방 없이, 그러니까 아팠다는 증거 따위를 제출하지 않아도 쉴 수 있다. 아파서 쉰 시간과 병원을 다녀온 시간은 근무 시간으로 인정받는다. 그러니 아파서 개인 휴가를 쓸 일도 없고 병원 다녀온 시간을 채우느라 추가 근무를 할 필요도 없다.

독일에 온지 2년 차가 되었을 때다. 오랜만에 시작한 직장 생활에 잘 안 되는 독일어, 생소한 분야 등의 어려움이 겹쳐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아토피가 도졌다. 내가 눈두덩이와 광대가 벌겋게 부은 채로 계속 출근하자 상사가 먼저 나서서 병가를 제안했다. 그는 내가 독일 법규를 잘 모를거라 짐작했는지 3일까지는 의사 처방 없이도 쉴 수 있다는 팁을 넌지시 주기도 했다. 

병가 4일째부터는 의사의 처방이 필요하다. 처방전을 받는 것은 생각보다 엄격하지 않다. 아토피는 의사 말마따나 일을 못할 정도로 엄중한 질병은 아니지만, 내가 눈 주위가 너무 가렵고 따가워서 컴퓨터를 보는 게 어렵다고 하니 일주일치 병가 처방을 써줬다. 

병가가 아무리 후하다고 한들 그냥 나 몰라라 쉴 수는 없는 법이다. 내가 쉬면 다른 누군가는 일을 더 해야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남겨진 동료들에게 죄스러운 마음을 가질 필요는 없다. 독일에서는 담당자가 자리를 비우면 비워진대로 일이 돌아간다. 그 자리를 메우는 동료는 담당자의 부재를 알리거나 긴급한 사안이 터지는지 감시 정도만 할 뿐 부재자의 업무를 떠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물론 그렇게되면 일처리가 더뎌질 수밖에 없지만 회사도 관공서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 눈치다. 아마도 담당자 책임제가 많아 다른 사람의 업무를 대신하는 게 어렵기도 할 테고, 원체 신속함과는 거리가 먼 이 나라의 업무 스타일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나저나 띤군의 회사에서는 자주 아픈 친구들이 꽤 있었다고 한다. 어떤 팀원은 한 달에 일주일씩 아프곤 했고, 외국인보다는 독일 사람들이 주로 그랬단다. 진짜 아팠는지 어쨌는지는 알 길이 없다. 분명 남용하는 이들도 있을게다. 본받을 만한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아플 때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장치와 그것을 자연스럽다고 보는 독일 사람들의 인식은 고마울 따름이다. 

초과 근무는 노땡큐 (회사가 파산할 일이 아니라면) 

베트남에 태양광 발전소를 세우는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다. 퇴근 후에 얼떨결에 베트남에 있는 파트너가 보낸 메일을 보게 됐다. 유럽에서 보낸 자재들이 호찌민 항구에 도착했는데 서류 몇 개가 부족해서 통관을 못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항구에서 제때에 물건을 찾지 않으면 하루에 몇백에서 몇천 달러까지 페널티를 낸다는 얘기를 들었기에, 나는 파트너에게 답장을 보내고 서류를 준비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팀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일하지 말라고 전화한 것이었다. 그의 말인즉슨, 내가 퇴근 후에도 일을 하면 다른 직원들한테 폐를 끼치는 거란다. 나는 그의 말에 어안이 벙벙해져서는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묻지 못했다. 지금도 긴가민가하지만 짐작하건대 내가 집에서도 일을 하면 다른 팀원들도 더 일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낄 수 있다는 뜻이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그는 당장 처리하지 않으면 회사가 파산할 정도의 중대한 사안이 아닌 이상 퇴근 후에는 일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퇴근 후에 일하는 것을 포함해서 모든 초과 근무가 독일 회사에서는 환영받지 못한다. 깔끔하고 확실한 칼퇴야말로 정상이자 모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과 근무를 꼭 해야 한다면 초과해서 일한 시간을 기록하고 이후에 그만큼의 시간을 근무 시간에서 뺄 수 있다. 수당으로 주는 곳도 있는 것 같지만 우리가 경험한 회사에서는 시간 대 시간으로 돌려받았다. 여가 시간이 항상 부족한 현대인에게는 분명 훨씬 나은 조건이다.

3 Comments

  1. LARA A.

    “아, 퇴근 이후에는 일하지 않는다” 되게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문화가 깊숙이 스며들어 있는것 같아.
    가끔 저녁 늦게 이메일을 받을때 이거 지금 보내야 하나 고민할때가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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