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헐적 단식, 뭣이 중헌디?

그날 저녁은 바게트 샌드위치였다. 원래는 인당 한 덩이씩 잘라놓고 먹기 시작했는데, 먹다 보니 그 큰 엑스트라 라지 사이즈의 바게트를 띤군과 둘이서 다 먹고 말았다. 잘 먹긴 했는데… 속이 더부룩한 건 어쩌나.

‘아, 이제 빵 좀 그만 먹어야 할까 봐. 배에 살도 좀 찐 거 같고.’

빵은 왜 이렇게 맛있는 걸까. 베이킹은 또 얼마나 재미있고! 이 두 조합의 매력에 푹 빠져서 하루가 멀다 하고 빵을 찍어내니 먹어치워야 할 빵과 쿠키가 집에 넘쳐났다. 좀 지나치게 먹는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기껏 만들어놓고 버릴 수는 없잖은가? 게다가 창조자로서 ‘내 새끼들’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와 의무감도 있고 말이다.

내 몸이 빵과 쿠키를 무한정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으련만… 먹어도 먹어도 살 안 찌는, 아주 간혹 가다가 있는 그런 ‘외계인들’은 얼마나 좋을까 하며 식단 조절을 고민하던 그때, 유튜브 화면에 걸린 단식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눈에 들어온다.

이렇게 절묘한 타이밍이라니. 똑똑한 알고리즘이 열일한 결과인 줄은 알지만 가끔은 컴퓨터가 내 생각을 읽는 것만 같아 조금 무섭다.

그래, 단식! 예전부터 가끔씩 해온 터라 나에게는 익숙한 주제다. 특히 간헐적 단식은 재작년에 띤군까지 합세해서 몇 개월을 유지했었는데, 다른 단식법에 비해서 음식을 참는 고통이 덜하고, 하는 방법도 간단하다.

다큐멘터리를 트니 다양한 연구 결과, 실험 후기와 함께 단식의 효능들이 쭉 나열된다. 과부하된 장기를 쉬게 하고..염증을 줄이며..(아토피! 염증!) 세포의 재생산을 돕고(노화 억제!)..항암 치료의 효과까지 높이는(헉!)..등등.

짐작은 했지만 역시, 다큐를 보고 나니 간헐적 단식을 다시 해야겠다는 의지가 솟는다. 자연스럽게 식이 조절도 되고 살도 빼는데 건강에도 좋다니. 게다가 단식 치고 간헐적 단식만큼 쉬운 게 없지 않은가?

그렇게 약 2주 전, 우리의 간헐적 단식이 시작됐다.

독일 다큐지만 그래도 궁금하실 분들을 위해 올려봅니다. (BR 다큐 보러가기)

첫날은 가볍게 지나갔다. 단식을 다짐한 전날 저녁, 9시에 저녁 식사를 마치고 다음날 저녁 6시에 저녁을 먹기까지 21시간을 단식했는데, 전날 먹은 게 있어서 그런지 오후에 살짝 배고픔을 느낀 것이 다였다.

점심을 거르니 시간도 벌었다. 여유로운 오후, 독일어 공부차 얼마 전부터 구독해서 읽고 있는 독일 주간 신문을 펼치자 이상하게 집중이 잘 되고 기사도 쓱쓱 잘 읽힌다. 오호라, 단식 중에는 소화기관이 쉬기 때문에 에너지가 뇌로 집중돼서 정신이 또렷해지고 학습 능력이 좋아진다더니만. 일거양득 아니 사득, 오득이구먼!

둘째 날이다. 첫날 별 어려움 없이 21시간 단식을 하고 나니 자신감이 붙어 오늘도 저녁까지 참아보기로 한다. 그런데 둘째 날이 되니 음식을 참는 게 첫날만큼 쉽지 않다. 산책을 나갔다가 맡은 어느 집에서 새어 나온 시나몬빵 냄새가 어찌나 달콤하고 향기롭던지! 빵가게에 진열된 빵은 또 때깔이….

‘이튿날이 되니 이제야 좀 단식을 하는 느낌이군’ 하는데, 어라, 오후가 되면서 머리가 띵하게 아파오고 뒷목이 당기기 시작했다. 일을 하려는데 집중도 안되고 이상하게 막 짜증이 난다. 그래도 저녁까지 버텨보려다가 요가를 하면서 그만 끝을 봐버렸다. 몸을 아래로 숙였다가 일어나는데 머리에서 ‘핑’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이 아닌가. 그대로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이건 좀 아닌 것 같아. 요가도 못 할 정도로 단식을 하는 건 아니지. 꼬리가 머리를 흔드는 격이니.’

간헐적 단식도 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인데, 하루에 한 끼만 먹는 건 나름 하드코어에 속한다. 내가 욕심이 좀 과했나 보다.

그래서 삼일째부터는 15-16시간만 공복을 유지하고 점심을 조금 먹어주기로 한다.

점심은 저탄수화물 식단으로 먹기로 했다. 주말에 마트에서 ‘초스피드 저탄수화물 요리’라는 레시피 책도 건졌는데, 소개된 메뉴들이 꽤 신선하다. 밀가루 없이 Quark(고단백 요플레)과 치즈, 계란만으로 빵을 만들질 않나, 애호박에 빵가루를 입히고 오븐에 구워내어 돈가스, 아니 호박 가스를 만들기도 한다.

치아 푸딩은 듣도 보도 못한 음식이지만, 마침 집에 유통기한이 언제까지인지도 모르게 한참을 굴러다니던 치아와, 녹차 카스테라를 만든다고 독일에서 돈 좀 주고 사놓은 녹차가루가 있었기에, 대환영을 외치며 당장 만들어보기로 한다. ‘냉장고 파먹기’에 이어 ‘주방 찬장 파먹기’는 주부에게 언제나 웰컴이지.
원래 레시피대로라면 잘게 부순 코코넛 조각과 싱싱한 베리를 넣어야 하지만 그런 것 따윈 집에 없으니 있는 것으로 요령을 부려본다. 이번 달로 유통기한이 끝나는 코코넛가루 (제대로 찬장 파먹기..), 냉동 베리, 유기농 두유로 치아 푸딩을 만들어보았더니, 오, 고소하면서도 약간 새콤달콤한 것이 맛이 제법 괜찮다. 게다가 치아의 영양가는 뭐, 오메가3에 풍부한 섬유질에 더 할 말이 있을까. 먹고 나면 포만감도 꽤 있는 것이, 괜찮은 점심 메뉴다.

우유와 베리를 넣고 만든 치아 푸딩
인터넷에도 치아 푸딩 레시피가 많아요. by Yumna from FeelGoodFOODIE

조금이긴 하지만 점심에 뭐라도 먹으니 두통도, 짜증도, 요가할 때 ‘핑’ 돌던 것도 싹 없어졌다.

헌데, 저녁 시간이 되자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낮동안 못 먹은 걸 저녁에라도 풀려는 양,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먹어야 할 목록을 머릿속으로 만들고 하나둘씩 먹어치우고 있는 게 아닌가. 마치 도장 깨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아, 이놈의 보상 심리…그렇게 먹고 또 먹으니 단식의 비움의 효과는커녕 속만 더 더부룩해졌다.

‘식탐은 정신 싸움인데, 내 정신은 너무 약해빠진 거 아님?’

건강해지겠다고 단식을 시작해놓고서는 저녁에 그리 먹어댄 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후회스럽기도 하여, 일어나자마자 심각한 얼굴로 자기반성을 하고 있는 내게 띤군이 웃으면서 말한다.

“이것도 다 행복하자고 하는 건데 몸과 마음이 그렇게 괴로워서야 되겠어? 건강해지는 것도 좋지만 단식을 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즐거워야지!”

속으로 무릎을 탁 쳤다. ‘자네, 말 한 번 잘했구먼! 뭣이 중헌지 를 놓치면 배가 산으로 가버리기 십상이지. 역시, 나는 나한테 잘 맞는 짝을 참 잘도 만났어, 그것도 지구 반 바퀴를 돌아서 말이야.’

그리하여, 우선 점심의 양을 늘리기로 한다. 치아 푸딩에 오트밀도 조금 섞고, 호두도 부셔 넣고, 단 거 좋아하는 띤군한테는 꿀도 한 스푼 타 준다. 거기에 삶은 계란을 인당 2개씩 추가하니, 먹고 나면 위가 은근 묵직한 것이 꽤 배가 차는 느낌이다.

딱 다이어트 식단이죠. 하지만 단순히 살만 빼려는 게 아닙니다. 소식小食이 건강에도 그렇게 좋다네요

그다음으로는 마음에 여유를 부여할 차례다. 다들 말하지 않는가, 지나친 건 부족한 것만 못하다고. 15-16시간 공복 시간만 제대로 지키고 그 이후에는 꼭 저녁 식사 때가 아니라더라도 먹어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허락했다. 재미있는 건, 이놈의 청개구리 같은 식욕이 먹어도 된다니까 오히려 잠잠해졌다는 것이다.

간헐적 단식을 시작한 지 2주 하고도 삼일이 지났다. 내 식욕님은 여전히 20대 초반, 혈기 왕성이시지만 이제는 철이 좀 들었는지 처음처럼 막무가내는 아니라는. 그래, 이렇게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배우는 거지. 그러니까 너무 쪼지만 말고, 잘하고 있다고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말지어다.

One Comment

  1. MarieMarie H

    녹차 치아푸딩 나도 한번 해봐야겠다! 집에 녹차가루 많은데 손이 잘 안가네~~~
    단식 루틴을 해보면 내가 내 몸을 의식적으로 컨트롤 하는 점을 배울 것 같아. 무의식적으로 먹는 게 아니라, 내 몸의 컨디션을 내가 자율적으로 맞춰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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