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장 자세라고 들어보셨는가.
요가를 마치며 하는 쉬는 자세로,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大자로 누워 10분을 보낸다.
그 모습이 꼭 죽은 사람 같다 하여 송장 자세라 하고, 본명은 사바사나(Savasana – 말 그대로 ‘송장 자세’라는 뜻)다.
한국에서 만난 한 요가 선생님이 말했다.
“요가는 다른 운동에 비해서 하고 나서 배가 덜 고파요. 끝에 사바사나로 충분히 쉬어주기 때문이죠. 덕분에 다이어트하기에 좋아요.”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다들 눈치채셨듯이, 이 자세의 본래 목적은 운동 후 찾아오는 허기짐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바사나는 ‘쉬는 것’, 그것도 몸과 정신의 ‘온전한 휴식’이 진짜 목적이다.
한 시간 남짓 몸을 다이내믹하게 움직이고 사바사나를 하기 위해 몸을 누이면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터져 나온다.
동작을 하며 의식적으로 조절했던 근육과 호흡을 모두 내려놓고, 떠오르는 생각은 얼음 위로 미끄러지는 돌멩이처럼 미끄러뜨려 보내버린다.
우리의 뇌는 잘 때도 쉬지 않고 일한다는 것을 아는가? 깨어있는 동안 보고 느꼈던 것들을 뇌 속에 분류하고 저장하는 활동을 벌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가 쉬는 유일한 방법은 정신 활동을 멈추는 것이다.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생각들을 잠시 멈추고 명상을 하는 것이다.
사바사나를 하는 10분은 지난 시간 동안 열심히 움직인 몸을 쉬게 하면서 정신도 함께 쉬는, 그야말로 ‘온전한 휴식’을 취하는 순간이다.
그나저나, 이론으로는 그 의미와 중요성을 이렇게 잘 알아도 실천하기란 왜 그리 힘들까?
“차파리타는 어째 쉬지를 않네, 개미처럼.”
나를 가만히 지켜보던 시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아님 원래부터 그런 건지,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걸 참 못하는 성격이다.
좋게 말하면 부지런하고, 다르게 말하면 나를 채근하며 해치워야 직성이 풀린다.
생각해보면 내 탓만은 아닌 것이, 이 세상은 끊임없이 성과, 효율, 생산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런 성격 탓에 내겐 사바사나가 참 어렵다.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 생각도 안 하는, 모든 것이 멈춘 10분.
가만히 있으니 습관적인 조바심이 인다.
뭔가를 놓치고 있는 듯한 불안감.
막상 급한 일이 있는 건 아니다.
그저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익숙지 않아서 그럴 뿐.
그러다가 밀려드는 생각의 홍수를 막지 못하면
생각은 벌써 저만치 내달리고 그를 따라잡지 못한 몸은 여기 남아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 괴리를 없애고자 결국 누워있던 몸은 10분을 채 못 견디고 용수철 튕기듯 사바사나에서 튀어 오른다.
몽골의 고비 사막을 다니며 많은 여행객들을 마주친 한 작가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게 고문만큼이나 힘든 사람들을 보았다고 한다.
여행에서 반드시 해야 할 것, 사야 할 것, 가야 할 식당을 찾듯
내 삶에도 틀을 만들고 그 틀 때문에 괴롭지는 않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집에서 요가를 한 지 6년이 됐지만 사바사나는 내게 여전히 어렵다.
쉬는 건 언제든 할 수 있다고 미루지 말고, 쉬는 것도 일하는 것만큼 적극적으로 하기로 한다.
마침 함께 블로그를 하는 마리마리가 월별 챌린지를 같이 해보자고 제안해 왔다.
하여, 나는 사바사나를 통해 ‘쉬는 연습’을 하기로 한다.

11월 챌린지: 사바사나, 요가 수련의 마지막 10분, 최선을 다해 아무것도 안 하기
11월 중순부터 챌린지를 시작했다.
일주일에 네 번 아쉬탕가 프라이머리를 하고 마지막에 사바사나를 한다.
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마음을 먹으니 책임감이 생긴다.
하기 싫은 생각이 드는 찰나, 그 생각을 미끄러뜨려 보내버리고 다른 생각이 들기 전에 어서 드러눕는다.
챌린지 덕에 할까 말까는 이제 고민의 대상이 아니다.
게다가 매번 챌린지 실천 후 씩씩하게 <챌린지 클리어!>를 알려오는 마리마리와 라라 덕에 나도 덩달아 의욕이 생긴다.
혼자서는 결단도 실천도 어렵던 것이 함께 하니 이렇게 수월하다.
사바사나 챌린지는 내년에도 이어간다.
이건 내 나름의 ‘인생 챌린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는 1월에는 새해맞이와 함께 새로운 챌린지를 이어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