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저무는 독일의 9월, 코로나로 짓눌린 감정들을 쫙 펼쳐놓고 통풍을 시키러 다녀왔다. 구글맵을 집념으로 뒤진 끝에 찾아낸, 우리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알프스 마을, 오버스트도프(Oberstdorf)를 소개한다.

‘가장 높은 마을’이라는 뜻의 오버스트도프. 인상적이게도 이곳은 다른 산악지역들과는 달리 기차가 들어와 있다. 차 없이 사는 나와 띤군에게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조건이다.
교통편
마음이 여유로워야 여행도 잘 즐길 수 있는 법! 그래서 우리는 하이델베르크(Heidelberg)에서 출발해 울름(Ulm)에서 하루 쉬고, 다음날 오버스트도프로 가는 느린 일정을 잡았다.
로마 때부터 상업과 교통의 중심지로 발달한 울름은, 띤군이 독일의 그 많은 맥주브랜드를 통틀어서 이제까지 맛본 최고의 맥주로 꼽는 바퓨서 하우스양조장 (Barfüßer Hausbrauerei – ‘맨발의 하우스양조장’!)이 있고, 아기자기한 동화마을 같은 어부지구(Fischerviertel), 웅장한 고딕성당인 울름 대성당 (Ulm Münster)도 있어, 하루 정도는 거뜬히 지루하지 않게 쉬어 갈 수 있다.
우리의 이동경로: 하이델베르크->울름->오버스트도프 * 하이델베르크->울름, 기차 소요시간 2시간 반, 직행 혹은 슈투트가르트(Stuttgart)에서 한 번 갈아타요. * 울름->오버스트도프, 기차 소요시간 2시간, 직행.
알프스 오감으로 즐기기 – 하이킹
오버스트도프를 병풍 처럼 둘러싸고 있는건 다름 아닌 알프스산맥! 알프스 최고봉에 비하면 비록 꼬맹이일지라도 그 웅장함은 역시 여느 산과는 다르다. 고개를 휙휙 돌릴 때마다 그림 같은 파노라마가 펼쳐지고, 거리 감각을 무색케 하는 웅장함과 그 공기, 색감, 청량함이 약간 비현실적이까지 하다. 풍경에 취해 나도 모르게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대게 되는데, 역시나, 눈으로 보는 것과는 비교가 안되는 것!

저런 뷰를 보려면 높이, 아주 높이 올라야 한다. 오버스트도프를 거점으로 갈 수 있는 하이킹 루트는 정말 많다. 그 수많은 루트 중에 우린 욕심내지 않고 8일 동안 딱 네 곳만 다녀오기로 했다. 하이킹 전문 웹사이트 코뭇(Komoot)에 가면 루트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앞선 경험자의 후기가 가득한데, 사전 탐색에 큰 도움이 됐다. 어플로도 다운 받을 수도 있고, 영어 지원도 된다. 서비스 사용은 당근 무료!
코스1: Birgsau→Guggersee 왕복 코스
위 사진에 꽂혀서 단번에 우리의 제 1 코스로 선정된 ‘빅스아우->구거시’ 코스다. 구거시(Guggersee)의 See는 독일어로 ‘호수’라는 뜻. 위 사진의 맑디 맑은 호수가 바로 구거시다. 코스는 중상급 코스로, 올라가는 내내 경사가 가파르고 자갈보다 큰 돌맹이 길이 많아 굉장히 미끄럽다. 하지만 압도적인 경치가 힘든 산행을 충분히 보상해준다. 좋은 몸상태에 비는 최대한 피해서 다녀올 것을 추천한다. (비 오는데 그 길을 내려와야 할 걸 생각하면 정말 아찔!)
이 코스에서 더 나아가면 민들하이머 산장(Mindelheimer Hütte, 해발 1885m)까지 갈 수 있다. 구거시에서 2시간 더 올라가고, 난이도도 ‘상급’인 코스다. 우리는 산행 초보라 구거시까지만 갔다 왔지만, 민들하이머 산장까지 올라가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내려오거나, 산장을 거점으로 더 먼 곳으로 하이킹을 가는 것도 가능하다. 단 민들하이머 산장엔 방이 없고 오직 침낭을 펴고 잘 수 있는 공간만 있다. 그리고 중요한건, 샤워실이 남녀 공용이라는 사실! 땀을 흠뻑 흘린 산행 후 안 씻을 자신이 있거나, 모르는 남정네/여성분들이랑 함께 샤워할 자신이 있는 분만 가시길!



*오버스트도프에서 빅스아우까지는 7번 버스를 타고 가면 된다. (30분 소요) 이 길에도 멋진 알프스 파노라마가 펼쳐져 자동으로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된다는!
(코스 상세내용, Komoot)
코스2: Fellhorn 정상 → Schlappoldkopf → Schlappoldsee -> Fellhorn 정상 순환 코스

펠혼(Fellhorn) 푸니쿨라를 타고 정상(2,038m)까지 편하게 가서, 그 위에서 경치를 즐기며 걷는 코스다. 펠혼 푸니쿨라를 타고 중간 정류장까지 가면 끝이 보이지 않는 알프스 산맥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그 곳에서 정상(Gipfel)까지 가는 푸니쿨라를 한 번 더 타고 올라가면 정상 정류장 오른쪽으로 하이킹 코스가 시작된다, 안내 표지판에서 ‘슐라폴드의 머리(Schlappoldkopf)’와 ‘슐라폴드 호수(Schlappoldsee)’ 방향을 확인하고, 다른 등산객들을 따라 걸으면 해발 2000미터의 가슴 뻥 뚤리는 경치가 펼쳐진다. 이 코스는 난이도 ‘중하’로, 초등학생 저학년으로 보이는 아이도 부모와 하이킹 하는걸 볼 수 있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낙타 등 같은 이 등산로가 국경이라는 사실이다. 걷다보면 오른쪽으로는 독일이, 왼쪽으로는 오스트리아가 굽어 보인다.
*펠혼에서 멀지 않은 솔러에크 푸니쿨라(Söllereckbahn)까지 하이킹을 이어갈 수 있지만, 지금은 이 푸니쿨라가 수리 중이다. 긴 산행 후 푸니쿨라를 타고 내려갈 계획으로 거기까지 갔는데 푸니쿨라가 멈춰있으면 그야말로 낭패! 그러니 코스를 계획할 때 푸니쿨라의 운행 여부를 미리 체크하길 바란다.
*펠혼 푸니쿨라 정류장까지도 7번 버스가 운행한다.
*여름시즌(5월 말~10월 말)에 방문한다면 호텔을 예약할 때 게스트카드(Allgäu Walser Premium Card)가 포함되는지 꼭 물어보길 바란다. 이 카드를 소지하면 지역 내 모든 푸니쿨라를 무료로 무제한 탑승할 수 있기 때문! 그 외에도 혜택이 많으니, 가기 전 아래 링크를 확인해 보도록. (오버스트도프 여름시즌 게스트카드)
(코스 상세내용, Komoot)
코스3: Oytal 코스

오이탈(Oytal, ‘오이 계곡’ – 먹는 오이와는 상관 없음!)은 오버스트도프 동쪽 알프스 산맥 사이로 펼쳐진 계곡이다. 계곡인 만큼 길은 약간의 오르막이 있는 산책길 정도. 오버스트도프 동쪽 끝자락에 있는 Nebelhorn(니블혼) 푸니쿨라 정류장을 지나면 코스가 시작된다. 오이 계곡물(Oybach)을 따라 설렁설렁한 산책로를 걸으면 처음엔 숲이, 그 다음엔 너른 들판과 거대한 알프스산이 주변을 감싼다. 우리는 계곡 음식점인 오이탈 하우스(Oytalhaus)까지 가서 늦은 점심을 먹고 돌아왔다. 오이탈 하우스의 테라스에 앉아 손에 잡힐 듯한 알프스 산을 바라보며 맛있는 Zötler맥주를 홀짝거리다보면 마음이 이상하리만치 차분해진다. 산의 고요한 위용과 순수한 우아함 앞에 모든 시끄러운 생각은 숨을 죽이고, 잔잔한 거룩함이 감싸온다.
*오이탈 하우스에서 돌아올 땐 씽씽이를 빌려 내려오기를 적극 추천한다. 걸어서 내려오는 시간의 1/3 밖에 안 걸릴 뿐더러, 상쾌한 공기를 맞으며 씽씽 내리막길을 내려오는 기분이 끝내주기 때문! 양 옆으로 펼쳐지는 엽서같은 풍경은 더 할 말이 없다. 씽씽이는 오후 3시 이후로만 대여 가능하고, 대여비는 한 대당 7유로다. 빌린 씽씽이는 오버스트도프에 마련된 반환소에 갖다놓으면 된다.
(코스 상세내용, Kommot)
코스4: 엔지안(Enzian) 산장 왕복 코스


해발 2000m 위에 있는 산장에서 하루 머물며 저런 풍경을 느긋하게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운이 좋아 안개 구름이라도 끼면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에 묘사된 그런 뷰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부푼 기대로 우리는 엔지안 산장(Enzianhütte)에 올라 하루 머무는 일정을 잡았는데, 안타깝게도 전날 눈이 60cm나 쌓이는 바람에 올라가지 못했다. 9월 말의 알프스 기상 치고는 굉장히 많은 눈이 내린거다.
이 코스의 난이도는 중급 정도로, 등산시간은 4시간, 거리는 6.7km, 빅스아우(Birgsau)부터 계산하면 총 840m를 오르는 루트다. 윗집 사는 70대 중반의 이브와 아담(가명)도 여기를 올랐다고 하니, 그리 어려운 코스는 아닐 것 같다.
엔지안 산장에는 다행히도 개인실과 샤워실이 갖춰져있다. 약간 ‘럭셔리 산장’ 축에 끼는 이곳은 야외 스파에 마사지, 코스요리까지 제공한다. 산장은 여름시즌인 5월 말~10월 초까지만 운영되고, 안전한 잠자리 확보를 위해 예약을 추천한다.
*엔지안 산장을 찍고 다른 산장이나, 연결된 등산로를 타고 몇박 몇일 등산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듣기로는 여기서부터 길이 꽤 험난해져, 체력과 장비에 더 신경을 써야 할거다. 갈 계획이라면 엔지안 산장에 오른 후 산장 주인에게 조언을 구하는걸 잊지 말자.
(코스 상세설명, Oberstdorf.de)
Must 코스: Breitach 협곡 (Breitachklamm)

브라이타크 협곡(Breitachklamm)은 만년 동안 걸쳐 빙하와 브라이타크 강물의 침식으로 형성된 거대한 협곡이다. 거센 물줄기와 거칠게 깎아내려진 암벽이 걷는 내내 ‘우와~’를 남발하게 한다. 물줄기가 센 곳에선 흡사 비행기가 가까이 지나가는 듯한 무시무시한 물소리가 울려퍼진다. 포효하며 쏟아지는 물줄기를 보고있노라면 자연의 에너지에 새삼 감탄하며, 나도 모르게 숙연해진다.
브라이타크 협곡의 입구는 독일에 있지만 투어를 마치고 나오면 짠! 오스트리아다. 다시 버스를 타러 입구로 가는 길에는 비어가든이 여럿 있다. 잠시 오스트리아로 넘어가서 맥주 한잔을 하고 오는 것도 좋은 생각이다.
*오버스트도프에서 44번 버스를 타면 20분 만에 브라이타크 협곡 입구에 도착한다.
모든 하이킹 코스가 그렇듯, 위에 나열된 코스들도 무한 연장(?) 혹은 변화가 가능하다. 흥미, 체력 등에 따라 맞춤 코스를 짜는 것도 추천한다. 코뭇에서도 그런 기능을 제공하는데, 조작이 간편해 꽤 쓸만하다.
알프스 오감으로 즐기기: 치즈! 맥주!

치즈와 맥주는 오버스트도프를 즐기는 또 다른 테마다. 치즈 생산지 답게 레스토랑에선 온갖 메뉴에 치즈가 곁들여 나온다 – 스테이크 위에도 치즈, 슈니첼(독일 돈가스) 위에도 치즈, 스페츨(Spätzle, 독일식 파스타)위에도 치즈가 듬뿍이다. 알프스 숙성치즈가 올라간 플람쿠흔(Flammkuchen, 알자스식 피자)도 농후한 치즈맛을 뽐내는 별미. 빵집에서 파는 샌드위치에도 독일의 다른 곳과는 다르게 버터 ‘덩어리’가 들어가는데, 아침 식사로 추천한다. 샌드위치 공략 중반부 쯤에 느껴지는 버터의 부드러운 풍미가 칼로리 따윈 싹 잊게 만든다는!

*다양한 치즈를 한 번에 맛보고 싶다면 브롯짜이트(Brotzeit, ‘빵-먹을-시간’!)를 주문해보시길. 독일식 주전부리 셋트라고 보면 되는데, 온갖 로컬 치즈에 로컬 살라미, 크림치즈, 약간의 과일, 그리고 이름이 <빵-먹을-시간>인 만큼 맛있는 독일 빵이 곁들여 나온다.

독일 여행 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게 싸고 맛있는 맥주다. 지역마다 로컬 양조장이 있어서 가는 곳 마다 색다른 맥주를 맛볼 수 있다. 맥주 러버들에겐 이런 천국이 따로 없다!
오버스트도프에서 우리는 담프 양조장(Dampfbierbrauerei)을 시작으로 한 5 종류의 지역 맥주를 맛본거 같다. 맥주 러버라면 다양한 맥주 브랜드를 마음껏 시도해보시길 바란다. 참, 맥주 대왕 러버를 위해 아침메뉴로 맥주를 주는 곳도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