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인주의 vs. 속지주의

속인주의(屬人主義), 속지주의(屬地主義).

국적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때면 자주 언급되는 단어들이다. 간단히 말하면, 속인주의의 인(人)은 ‘사람’을 나타내 부모의 국적을 따르는 혈통주의를 의미하며 속지주의의 지(地)는 ‘땅’을 의미해 땅, 즉 태어난 국가에 따라 국적이 자동으로 부여되는 것을 말한다. 속인주의를 국적법으로 채택하고 있는 나라에는 독일과 일본이 대표적이며 속지주의를 채택하는 나라에는 미국이 있다. 한국은 국적법으로 속인주의를 채택하고 있어 태어난 지역과 상관없이 부모 중 한명이 한국인이라면 아기에게 자동으로 한국 국적이 부여되는 것이다. 이와 달리, 미국에서는 부모의 국적과 상관없이 미국 영토 내에서 태어나는 모든 아기들에게 미국 국적을 자동으로 부여하고 있다.

속지주의의 나라: 미국

별거 아닌것 같아 보이지만, 속인주의와 속지주의로 인해 여러가지 사회적 이슈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한 예로 미국에는 부모님이 서류 미비이민자 (혹은 불법체류자)인 아이들이 약 900만명에 달하며 그 중 절반인 450만명은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시민권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서류 미비 이민자일지라도 미국에서 아기를 낳으면 미국의 속지주의 국적법으로 인해 아기는 미국 시민권을 얻게 된다. 그 결과, 아이는 미국 시민권자지만 부모님은 불법 체류자로 간혹 부모님이 미국에서 추방(deportation) 되어 가족이 해체 되는 슬픈 소식도 종종 들리곤 한다.

속인주의의 나라: 일본

속지주의처럼, 속인주의를 국적법으로 하는 나라에도 많은 이슈들이 있다. 한국과 가까운 이웃나라인 일본의 재일 교포들을 예로 들어 보겠다. 자이니치(在日)코리안이라고 불리는 그들은,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한국 국적을 계속 유지해 나가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현재,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재일교포는 일본에 약 30만명이 있다. 물론, 재일교포 중,한국인으로서 자긍심과 고유한 문화를 지키기 위한 노력으로 국적을 유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는 일본과 한국의 속인주의, 즉 혈통주의에 바탕을 둔 국적법과도 관련이 깊다. 일본에서 태어났을지라도 한국 혈통이면 자동으로 한국 국적이 부여되기에 많은 재일교포가 한국 여권을 갖고 있는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를 말하자면, 앞에서 언급했듯이, 일본 또한 국적법이 속인주의에 의거하기 때문에 일본혈통이 아니라면 아무리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고 할지라도, 자동으로 일본 국적을 취득할 수 없으며, 반드시 귀화를 신청하는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한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한국과 일본은 골이 깊은 사이이며 재일교포들도 일본사회에서 받은 차별과 서러움이 뒤섞여 귀화가 쉽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일본으로 많이 귀화하는 추세라고 한다.)

여기까지가 내가 이민관련 수업을 들었을때 국적법에 따른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아하’ 하며 알게된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속인주의, 속지주의의 뜻은 알지만, 나는 한국에서 한국인 부모님 밑에 태어났기에. 즉, 태어난 곳과 부모님의 국적이 같았기에 이 개념들이 머리속으로 이해는 됐지만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위의 이슈들과 조금은 결이 다른 이야기지만 ) 바로 내가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 말이다.

우리 이야기: ‘혼인신고’ 대신 마우이의 ‘출생신고’

나는 올해 한국계 미국인인 마우이와 결혼을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한국에는 가지 못해 대신 엘에이에 있는 총 영사관에 가서 혼인신고를 하기로 했다. 엘에이에 가기 전 미리 영사관에 연락해 필요한 서류들을 다 준비했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이날 혼인 신고는 못 했다. 대신, 생각치도 못 한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앞에 언급했듯이, 마우이는 미국에서 태어났고 부모님 두분이 한국 분이시다. 속지주의 나라답게 미국에서 태어나 자동으로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 마우이의 부모님(나에겐 시부모님)께서는 80년대 초반에 미국으로 이민을 왔고 마우이가 미국 국적이 있기에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 한국에는 출생신고를 안 하셨다고 했다. 나 또한 한국은 이중 국적을 허용하지 않는 나라라고 들었기에 그렇게 해도 문제 될것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는 30년이 훌쩍 지나 2020년에 터졌다.

마우이와 나는 엘에이 한인 타운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예약 시간에 맞춰 영사관을 찾았다. 민원 안내 데스크에 서류들을 제출했는데, 영사관 직원분으로 부터 혼인신고보다 먼저 마우이가 한국에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응? 출생신고?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에 출생신고? 마우이는 미국에서 태어났는데?!” 아차 싶었다. 그제서야 한국은 속인주의 나라라는게 생각이 났다. 마우이는 1980년 초반에 미국에서 태어났고 그 당시 아버지께서 한국 국적이셨기 때문에 마우이는 자동으로 한국인이 되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부계중심이었던 국적법이 1998년 개정을 통해 양계주의가 되어 이제는 부모 중, 한명이 한국 국적이면 아이는 한국 국적을 자동으로 취득할수 있도록 되었다.)

만약, 마우이가 미국인 혹은 다른 나라 국적 사람과 결혼한다면 꼭 굳이 한국 국적에 등록해야 할 이유가 없었겠지만, 아내인 내가 한국인이기에, (아직 없지만) 앞으로 태어날 우리 아이들의 출생신고를 위해서라도 해야하는 절차라고 했다. 예상치 못한 일에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마우이는 한국에 출생신고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행정 절차상 출생신고는 아기가 할수 없는 것이라 부모님이 직접 와서 해야 한다고 했다. “서른이 훌쩍 넘은 마우이가 아기라니” 너무 웃픈 상황이었지만, 결국 시부모님께 연락해 출생신고를 부탁드려야만 했다.

다시 정리하자면, 부모 중 한명이라도 한국 국적자라면 아기는 태어난 국가와 상관없이 자동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하게 된다. 조금 더 자세하게 이야기 하면, 출생신고를 한후 남자 아이의 경우, 만 18세, 여자 아이의 경우에는 22세에 국적을 선택 하면 된다고 한다. 그런데 남자의 경우 만 18세에 국적을 포기 하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만 37세까지 한국 국적이 연장된다고 한다. 마우이의 경우에는, 태어난 당시 한국에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고, 만 18세에 국적도 포기하지 않았기에 자동으로 만 37세까지 한국 국적이 연장된 것이다. 그리고 특히, 남자의 경우에는 한국에는 병역의 의무가 있어 조금 복잡해 질수 있다. 다행히, 마무이는 국외 출생자이기 때문에 병역의 의무는 지지 않아도 되어 일단 병역 연기 허가를 받을수 있었고, 만 37세가 되면 한국 국적 포기할수 있는 기간을 주는데, 그때 포기하면 된다고 한다.

결국, 한국 국적을 취득한 마우이

대한민국 외교부에서 발행하는 여권이다
출처: 대한민국 외교부

혼인신고를 하러 영사관에서 간 마우이는 그렇게 생각지도 못한 한국 국적을 취득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전과 달라진게 있다면 앞으로 한국에 갈때는 반드시 한국 여권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여권도 발급받아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날 이후로도 영사관에 3번을 더 찾아가야만 했다. 절차가 복잡하긴 했지만 결국 우리는 한국에 혼인신고를 했고 마우이는 한국 여권과 미국 여권을 둘다 취득한 복수국적자가 되었다. 이로 인해 우리 부부는 더이상 국제 결혼이 아닌 국내 결혼(?)이 되었다. (헛. 국제결혼의 반댓말이 뭐지? 국적이 같은 결혼이라고 해야하나?!)

앞으로 해외에 사는 원더우먼들이 아기를 낳는다면 어느 나라에 상관 없이 우리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속인주의의 국적법에 의해) 우리의 아이들은 자동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한다는 점! 그러니 해외에 있다면 가까운 영사관에 가서 출생신고를 해야하고 아이가 만 18세가 되면 어느 국적을 갖을 것인지 선택하면 된다는 것! 꼭 기억하도록 하자! 그리고 현재 사는 국가의 국적법이 속인주의인지 아니면 속지주의인지에 대해 알아두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비록, 계획대로 이 날 한국에 혼인신고를 하지는 못했지만, ‘속인주의’와 ‘속지주의’에 대해 제대로 배웠다. 그리고 새삼 국가가 어떻게 해외에 있는 자국민들을 섬세하고 촘촘하게 관리하고 통제하는지에 대해 ‘책’이 아닌 몸소 겪은 ‘잊지 못할 날’이 되었다.

참고한 자료들

[1]Disrupting young lives:How detention and deportation affect US-born children of immigrants

[2]부모중 한쪽 한국국적 보유 병역면제 국적이탈 신고해야, 한국일보

3 Comments

  1. MarieMarie H

    혼인신고 하러 갔다가 출생신고~ ㅋㅋㅋ 훗날 에피소드가 될 것 같아요. 나중에 우리가 자녀가 생기면 영사관에 가서 출생신고를 해야 하네요. 속인주의 vs 속지주의 이해 제대로 됐어요~!

    Liked by 1명

    1. LARA A.

      응! 이제는 해외에서 아기 낳으면 영사관에 가서 출생신고 하는게 당연한 이야기인데 80년대에는 주위에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잘 몰랐을수도 있었을것 같아. 나도 이번에야 제대로 알게 된듯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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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eewhy

    예전에 국제관계학 배우면서 속인주의와 속지주의에 대해 배웠었는데… 이민시대에 국적에 대한 관념이 많이 바꼈죠. 많이 공감하는 글이에요. 저의 할머니는 나고야에 태어나서 20년간 일본에 사셨던 자이니치셨어요. 나중에는 귀화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일본 이름으로 바꿔야된다고 해서 귀화하지 안하셨죠. 그리고 제 동생은 필리핀에 태어났었지만 출생신고를 필리핀이라고 했다면 18세때 국적을 선택해야하는 복잡한 절차가 있기 때문에 부모님께서 서울이라고 필리핀 영사관에 신고했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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