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아니 ‘님’ 따라 떠도는 삶에 대해 #노마드#방랑의 고충

어쩌다 ‘프로 이사러’

2014년 5월, 나는 멕시코로 떠났다. 지난 1년간 한국에서 교제하며 애정과 신뢰를 쌓아온 띤군을 따라, 그의 나라에서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해보기로 했다.

그 후 오늘에 오기까지 참 많이도 이사를 다녔다.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와 트렌디한 상업도시 푸에블라Puebla를 거쳐, 멕시코에서 독일로 ‘초장거리 이사’를 감행한 다음, 독일에서는 서남부의 코딱지만한 도시 상크트 잉버트St. Ingbert에서만 이사를 두번, 그 후 프랑크푸르트 옆동네 오픈바흐Offenbach로 집을 옮긴 뒤, 마지막으로 지금 사는 하이델베르크Heidelberg에 ‘정착’했다. 세어보니 6년 동안에 총 6번, 1년에 한 번 꼴로 이사를 했다.

(해외)여행을 하던 이사를 하던 항상 많은 짐과 캐리어

미니멀 라이프에 접속하다

자주 이사해보신 분들은 아실거다. 이사할 때마다 짐은 왜 그리 많게 느껴지는지! 살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이삿짐을 싸다 보면 어디선가 끊임 없이 물건이 나온다. 정말 많아도 너~~무 많다. 싸다가 지치면 다 갖다 버리고 싶은 충동이 마구 든다. 그럴 때마다 나는 몸서리를 치며 ‘다신 짐 될만한건 사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그렇다고 정말 아무것도 안 사는건 아니다. 이사 때가 지나가고 새 터전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또 이것 저것 사고 싶은 욕구가 스멀스멀 기어올라온다. 하지만 몇 번의 이사를 겪고 나서는 학습 효과가 발휘되, 물건 사는 횟수가 줄어든다. 그리고 물건을 살 때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게 된다. 정말 필요한 것이 아니면 안 사기. 그리고 있는것 최대한 사용하기. 언제 또 이사해서 짐을 처분해야할지 모르는 일이니 짐을 최대한 늘리지 않고, 늘리더라도 처분할때 그나마 덜 아까운 헌것을 찾게된다. (멀쩡히 새것 같은 헌것도 많다!) 헌 녀석들은 저렴하다는 것 외에도 그녀석들이 쓰레기가 되는걸 막음으로써 환경에도 일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우리는 전에 살던 사람들이 필요 없어 하는 물건을 저가에 사들이거나, 버리고 가는 것들을 그대로 집에 놓고 쓴다. 우리집의 얼마 있지도 않은 가구의 90% 이상은 다 이렇게 취득한 것들이다.

이렇게 한동안 살아보니 ‘없어도 산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내 생각과 삶의 많은 것을 바꿔놓은 소중한 깨달음!) 있는걸로 문제를 해결하려다보니 수작업과 번거로움에 익숙해졌다. 맹목적인 자동화, 편리함 선호를 넘어, 내 손을 좀 더 타고 나의 관심을 쬐끔 더 필요로 하는 ‘재래식’에 더 관심을 갖게 됐다. (뭐든 있는걸로 뚝딱뚝딱 만들어내고 문제를 해결하는 ‘수작업 예술가’ 띤군의 영향이 크다) 그리고 무엇보다 짐이 덜하니 가볍다. 몸도 마음도!

여행이던 이사던 짐을 덜면 몸이 가벼워진다. 이에 절로 나오는 가벼운 춤은 덤.

방랑이 체질이어도, 가끔은 참을 수 없이 외롭다

남편따라 여기저기 다닌 덕에 참 많이 보고 경험했다. 그러나 거기에는 결정적인 에러사항이 있으니, 바로 친구를 못 사귄다는 점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깊은 친구’를 사귀기가 참 어렵다. 이제 서로 좀 알아간다 싶을 즈음이면 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은 연인관계에만 해당되는건 아니다. 한동안 가깝게 지내던 친구도 몸이 멀어지면 교류도 자연스럽게 뜸해지고, 그러다보니 관계를 깊이 가져갈 수가 없다. (‘원더우먼’이 생겨난 이유가 여기에!)

삶의 근거지를 자주 바꾸는데서 오는 여러 힘든 점과, 완전히 새로운 나라에서의(독일) 절대 쉽지 않았던 생존미션(?)을 함께 클리어해 나가면서 남편과의 관계는 더욱 더 돈독해졌으나,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너무 둘이서만 놀고 있는게 아닌가. 둘이 짝짝꿍이 잘 맞을 땐 괜찮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땐, 특히 다투기라도 하면 끝도 없는 외로움의 나락으로 빠지곤 한다. 친구에게 가서 속시원히 털어놓고 위로받고 싶지만 찾아갈 친구가 없다. 가끔 (꼴도 보기 싫을 땐) 집에서 뛰쳐나가 친구집에서 하룻밤 신세라도 지고 싶지만, 갈데가 없다. 이런 내 현실이 가끔은 참 처량하고 안쓰럽게 느껴진다.

노마드 인생도 좋지만 드넓은 칸쿤 해변에 홀로 있는 듯한 외로움은 어쩔 수 없다

내가 주인공인 삶이란

나의 이 ‘노마드식 삶’ 의 또 다른 그림자는, 내가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고 있지 않고 있다는 회의감이다. 우리가 이 도시, 저 도시로 옮겨 다닌 까닭은 사실 띤군이 더 나은 근무조건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그 때마다 우리는 둘 다를 위해 항상 이주를 선택했다. 헌데, 그렇게 몇년이 지나고 보니 커리어에 있어서 남편은 차근차근 쌓아올린 탄탄한 길을, 나는 새로 정착하는 곳마다 새로 시작하는 ‘도돌이표’ 같은 길을 가고 있더라.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로 생각해보는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옛말

삶의 대부분을 일을 하며 보내는 우리에게 커리어는 단순한 ‘경제활동’ 그 이상이다. 사람은 일을 하면서 사회와 소통하고, 사회에서 자기 자리를 찾는다. 사회관계망을 처음부터 새로 구축해야하는 외국에서는 주로 이 ‘일’이라는 매개체을 통해 친구를 만들고 관계를 쌓는다.

그리고 일과 커리어는 부득이하게도 자존감과 직결된다. 커리어가 자존감에 갖는 위력은 ‘나’라는 사람을 직업이 상당 부분 정의하는 요즘같은 세상에선 가히 가공할만하다. (그게 옳다고 보지는 않지만!) 생각해보시라, 누군가를 소개할 때 가장먼저 거론되는게 무엇인가? 바로 직업이다. 새로운 사람을 알게됐을 때 사람들이 이름 다음으로 하는 질문은? ‘무슨일 하세요?’ 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직접 탐구하기도 전에 우리는 그 사람의 직업으로 많은 것들을 미리 판단하고 넘겨짚는다. 그리고 결정적인 문제는, 나도 그 사회의 시선을 일정 부분 받아들여, 그 편견 투성인 렌즈로 나 자신을 바라본다는 거다. 그래서 커리어가 다가 아닌줄 알면서도, 그 부재가 나에게 가져다주는 공허함과 자괴감은 참으로 컸다. (아니, 지금도 상당부분 그렇다)

에두아르 마네의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에서 느껴지는 공허함에서 방랑하는 삶, 커리어의 부재의 공허함을 느낀다

커리어의 영역을 넘어 더 근본적인 회의감도 따라다닌다. 내가 선택한 길이지만, 이 선택으로 인해 내 잠재력을 진득히, 충분히 발휘할 기회를 못 찾는게 아닌가 하는. 내 삶을 온전히 살고 있지 않은 느낌, 이 ‘직무유기’를 저지르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은 옅은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닌다 .

사랑하는 연인 파티마 마저 뒤로한채 자기 삶의 길을 온전히 가기를 택한 <연금술사>의 주인공 산티아고

노마드 삶에서 덤으로 얻은 ‘0개 국어 현상’

지난 몇년간 멕시코와 독일에서 살면서 스페인어와 독일어를 배우게 됬다. 참 당황스러운건, 이게 그 전에 알던 다른 언어들과 짬뽕되면서 말을 할 때면 모든 언어가 뒤죽박죽으로 튀어나오곤 한다는 거다. 어떨땐 말하고 싶은 단어가 그 어떤 언어로도 생각이 나지 않을 때가 있다. 이름하여 ‘0개 국어 현상’이다. 그럴땐 답답해 미친다. 언어는 처음에 배우는 것도 어렵지만, 배운걸 유지하는건 더 어렵다. 우리가 앞으로 또 어디로 이사를 가게 될진 모르겠지만 한가지는 분명하다. 새로운 언어를 (또!) 배워야 하는 곳은 가지 않을 거라는 점!

‘님’도 ‘남’… 님 따라 떠도는 삶에 대해

‘남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지우고 님이 되어 만난 사람도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도로 남이되는 장난같은 인생사…’
<가수 김명애씨의 ‘도로남’>

‘님’에 대한 경험도, 개념도 없었던 어릴적,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 노래를 그저 느낌만으로만 어렴풋이 이해한 채 잘도 따라 부르던 기억이 난다. 어른이 되어서 가사를 음미해보니 참 잘도 비유했지 싶다. 아무리 남편이라도 그 사람이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순 없기에, 그도 결국은 ‘남’인 것을. 너무나 가까우면서도 동시에 너무나도 먼, ‘님’과 ‘남’이라는 아이러니.

문득 생각해본다. 뭘 선택했던간에 ‘전혀 아쉽지 않은 삶’ 이라는게 있을까? 이 길 또한 내가 선택한 것임을 잊어선 안될지어니..! 그러니 내가 있는 곳에서 최대한 재밌게, 즐겁게 살아보자 다짐해본다. (일도 결국 잘살자=즐겁게 살자고 하는거 아니겠는가?) 마지막으로, 떠도는 삶을 통해 나에게 많은 깨달음의 기회를 선사한 띤군에게 무한히 감사하는 바이다.

삶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신박한 SF 시나리오를 통해 던지는 영화, 패신저스

2 Comments

  1. MarieMarie H

    이번 글 완전 공감 🙂 1년에 한번씩 이사라니, 그동안 진짜 수고했다. 이사짐 싸는거 엄청 힘들어… 0개 국어 ㅎㅎ 가끔 정말 단어가 생각 안 날 때가 있어. 영어도 편할 때는 술술 나오다가 어쩔 때 막히기도 하고… 5개 국어를 배우면 진짜 더 그럴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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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LARA A.

    나도 大 공감! 특히, “깊은 친구” 사귀지 못하는 점 … 계속 떠돌아 다니니깐 세계 곳곳에 친구는 많지만 정작 힘들때 … 연락할 친구가 별로 없다는거. 그리고 언어가 뒤죽박죽 되어 가끔 버퍼링 … 걸리는 점 ^^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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