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미국 카이저 Kaiser 병원 출산 후기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던 출산일. 분만실은 어두운 수술실이 아니라 아늑했고 드라마에서 보던 남편의 머리카락을 뜯으며 소리지르는 그런 모습은 없었다. 진통은 점점 강해졌지만 그것마저도 무통주사로 금방 잊혀졌다. 그리고 나는 출산 준비가 되면 당연히 산부인과 의사선생님을 만날 줄 알았는데 조산사 한 분이 시작부터 끝까지 약 12시간을 옆에서 보살펴 주며 아기 분만까지 도와주셨다. 무통주사는 생각보다 강력했고 BTS 앨범을 들으면서 힘주기를 했던 신선한 경험을 한 날이었다.

#1. 입원부터 열 두시간의 진통 기록 – 무통주사 천국을 경험하다!

예정일 다음 날 새벽 세 시, 양수가 터졌다. 잠에 든 지 얼마 안 돼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깼는데 뭔가 촉이 왔다. 남편을 깨우고 비몽사몽으로 병원에 갈 준비를 하는데 다리에 힘이 빠진 듯 후덜거렸다. 분명 짐을 다 싸놓았는데도 더 챙길 건 없나 두리번 거리고 추가로 입을 옷가지와 베개, 짐볼까지 양손 가득 챙겨 서둘러 나왔다.

그렇게 어두운 밤 고속도로를 달려서 병원에 도착. 코로나 여파로 남편은 밖 대기실에서 기다려야 했는데 간호사가 자궁 경부가 열린 정도를 보고 입원 여부를 결정한다고 했다. 다행히 입원 확정을 받고 분만실로 안내 받았고 그 때부터 온 몸의 긴장이 풀렸다. 전날 밤에 마무리 지어야 할 과제가 있어서 한 시간 밖에 못 잤더니 금방이라도 잠이 들 것 같았는데 내가 진통을 슬슬 느끼기 시작할 즈음 남편도 옆자리에서 잠깐 눈을 부쳤다.

진통이 시작한 뒤 5시간 쯤 지나고 내가 진통으로 힘들어하자 간호사가 무통주사를 투여하길 권유했다. 자궁 경부가 5센치 정도 열리면 진통이 더 강해지는데 그럴 때마다 몸을 비틀면 척추에 무통주사를 놓기가 더 어렵다고 한다. 참을 만큼 참았다고 생각이 들 즈음 무통주사를 투여하기로 했다. 그리고 말로만 듣던 무통주사 천국을 경험했다!! 이 좋은 걸 내가 왜 늦췄을까. 통증이 심해지면 진통제를 원하는 만큼 더 투여하라며 간호사가 오른쪽 팔에 링거도 꼽아주었다. 링거 선을 따라 약 봉지를 확인해보니 중독성이 강하다는 마약성 진정제 “펜타닐”이란 글자가 적혀져 있었다.

사실 내 기억 속 출산일이 평소와 다르지 않게 느껴졌던 부분 중 하나는 남편의 여유로움이었다. 남편은 육아휴직을 썼는데도 불구하고 마무리 지어야 할 일이 있다며 내가 분만에 들어가기 전까지 옆에서 업무 미팅을 하고 있었다. 조금 황당스러웠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까지 최대한 일을 끝내고 싶다는 남편을 바라보며 나는 유튜브에서 찾은 호흡법으로 호흡을 연습했다.

#2. 조산사와 남편, 그리고 나 셋이서 분만을 진행하다.

입원 후 약 열 두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자궁 경부가 10센치가 열렸다. 아직 의사 선생님을 못 봐서 언제 오시냐고 물어봤더니 나는 고위험군 출산이 아니어서 의사 선생님은 안오신단다. 나를 봐주던 간호사 분이 초반 분만을 진행하고 후반부에 조산사(Certified Nurse Midwi, CNM)가 와서 출산을 마무리한다. 회음부를 꾀매는 부분도 조산사가 해 주신 것으로 기억한다.

분만은 진통이 올때마다 약 30초에 걸쳐서 호흡 및 푸쉬를 진행하는데 무통주사 때문인지 하체 아래로는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다만 조산사가 알려준 대로 있는 힘을 다해 숨을 쉬고 내뱉기를 약 두 시간 간 했다. 분만의자에 앉아있다 보면 그 동안 스쿼트를 열심히 할 걸 하는 생각이 든다. 오후 시간이라 아직 날이 밝은 데 평상복을 입은 남편이 옆에서 분만과정을 지켜보는 모습 또한 이상했다. 꼭 가정에서 둘라를 불러서 출산을 하는 것 같았다.

#3. 출산 후 아기와의 시간.

사실 나는 출산이 끝난 지도 모르고 있었다. 두 시간동안 숨을 참고 내 뱉기를 반복적으로 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기 울음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간호사가 내 배 위에 아이를 올려주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 기분이 참 이상했다. 내 몸 속에서 나온 생물체라니… ‘아! 정말 이상한 느낌이다.’ 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먼저 아기의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려 준 다음 사진 속 검진대에서 아기가 건강한 지 검사를 진행했다. 검사가 끝나고 남편은 마냥 행복하다는 표정으로 아기를 안고 있는데 드디어 이 과정이 끝났구나 싶었다. 출산 과정이 끝나자 분만실로 저녁을 준비해서 오늘의 제대로 된 첫 끼를 먹을 수 있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 기분.

#4. 회복실 – 산후조리원 대신 2박3일 집중케어

분만실에서 회복실까지는 휠체어를 타고 이동한다. 산후조리원을 경험해 보진 못했지만 푹 쉬기에는 정말 편했던 2박 3일 회복실이었다. 간호사 분들이 정말 친절했고 내가 회복에 집중할 수 있도록 각종의 진통제와 약들을 시간 맞춰서 가져다 주신다. 간호사가 따뜻한 물을 받아 좌욕도 준비해줘서 회복실에 입원해 있는 동안 회음부 케어도 했다. 이런 게 산후조리원에서 받는 케어일까. 허락만 한다면 조금 더 머물고도 싶었지만 건강에 별 문제가 없으면 2박 3일 후 퇴원해야 한단다.

나는 오랜기간 출산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 지인들이 공유해 준 간접 경험에 더해 드라마나 영화에서 묘사되는 장면을 보면서 나는 출산을 감당 해 낼 용기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랜 시간동안 미뤄왔지만 결론적으로는 아기를 갖길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개개인의 경험은 다르겠지만 2박3일 후 바로 퇴원하는 것도 생각했던 것 만큼 어렵지 않았고, 지나고나니 잊혀지는 고통이다. 출산의 고통은 잠깐이지만 아기가 주는 행복은 영원하다는 말을 이제야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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