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김치 수업을 열다

띤군이 St. Ingbert에서 근무하던 시절, 직장 동료 중에 김치와 김치로 만든 것이라면 뭐든 사랑하는, 놀라우면서도 반가운 독일 친구가 있었다. 음식의 호불호를 표현하는데 있어서는 특히나 꾸밈 없었던 그의 이름은 어네스트Ernst (독일어로 ‘솔직함’을 뜻함). 그는 나를 처음 본 날 김치볶음밥에 대한 자신의 각별한 애정을 어필하며, 은근슬쩍 질문을 던져왔다. ‘너도 김치 만들 줄 알아?’

우리의 김치 소모임은 그렇게 시작됐다.

St. Ingbert 김치 소모임의 고정멤버는 김치사랑의 대표주자 어네스트, 그의 오랜 친구이자 집에서 직접 김치를 담궈보기까지 한, 김치사랑 넘버 투 더크Dirk, 아시안 푸드가 그리운 중국 jiangxi성 출신의 직장동료 이Yi, 띤군 그리고 나, 이렇게 다섯명이다.

우리의 집합 아지트는 더크의 집이었다. 깔끔한 주방에 넉넉한 뒷마당이 딸린 그의 집은 사람을 여럿 불러 그 자리에서 뚝딱 음식을 만들고 뒷마당에서 한탕 벌려 먹고 놀기에 딱이었다. 그의 집엔 항상 졸리운듯 느슨하게 풀어져있는 고양이가 두 마리 있었고, 한 번도 가지치기를 안 한듯 와일드하게 자란 사과나무와, 온갖 종류의 술이 보물처럼 숨겨져있는,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 나올법한 엔틱 목재함이 거실 한 가운데에 있었다. 가끔 쉬는날에는 그의 다 큰 아들들도 맥주 한 잔을 따라들고 모임에 조인하곤 했다.

독일친구 집에 모여 자를란트주 스타일의 바베큐 저녁모임을 여는 중
더크네 집 정원에 모여 즐기는 슈벵커(Schwenker, 자를란트州식 바베큐)

그곳에 모여 Yi의 진두지휘 아래 꽁빠오지띵(宫保鸡丁)을 만들어 먹고, 우리집 김치로 돼지고기 김치찌개와 김치볶음밥을 해먹던 어느 날, 어네스트가 제안해왔다. 김치 만드는 법 좀 가르쳐 달라고! 자급자족을 통해 더 적극적인 김치 소비를 꾀하는것 같아, 내심 뿌듯함을 느끼며 흔쾌히 오케이! 했다.

그렇게 기획된 1일 김치 강습. 강사는 한국인이자 엄마 김치맛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독일에서도 나름 오리지널의 시원한 맛을 구현한다고 자부하던 나. 수강생은 독일인 셋, 중국인 하나. 그리고 한국여자와 같이 살아서 김치 만드는 법을 배울 필요가 없다는 멕시칸 강습 보조 하나.

강습 1시간 전, 멕시칸 보조한테 전화가 왔다. 김치 재료를 사러 가는데 리스트를 보내달란다. 그래서 물었다. 얼마나 할건데? 귀엽기도하지, 인당 한 포기씩 담근단다. 독일 배추는 또 크기가 한국 배추의 반 밖에 안된다. 어지간히 아기자기한 김치 강습이 될 것 같은 느낌이다.

더크 집에 모여 사온 재료를 펼치다 뜨악했다. 김치속을 버무릴 넉넉한 통이랑 김치를 숙성시킬 뚜껑 달린 반찬통을 사오라고 했더니 글쎄 장난감 같은걸 보관하는데 쓰는 다용도 플라스틱 컨테이너를 사온것! 여기에 김치도 무치고 숙성도 시킬거란다. 아하, 1타 쌍피! 근데, 손잡이 부분에 구멍이 뻥 뚫려있어서 뚜껑을 닫으나 마나인 이런 통을 갖고 김치를 어떻게 숙성시킬건데?

독일에서 김치를 담그려는데 김치통이 아닌 장난감통을 사온 독일 수강생들

어떻게든 되겠지 싶어 우선 시작해보기로 했다. 맥주를 한 잔씩 따라들고 홀짝홀짝 거리며 배추를 절였다. 소금이 배추를 속속들이 파고드는 동안 수강생 별로 누구는 양파, 누구는 마늘, 누구는 파 이런식으로 재료를 분담해 까고, 자르고, 다지기를 반복했다. 배우러 모여놓고 정작 배우는거엔 별 도움이 안되는 자본주의식 분업시스템을 돌리고 있는 모양새가 조금 우습긴 했지만 어쩌랴, 삶의 다른 많은 구석에서도 그렇듯, 또 효율성의 승리인 것을.

독일친구들에게 김치 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마늘, 양파, 파, 고추, 생강, 거기에 액젓까지….눈과 코를 찌르는 재료들만 모아놓은 덕에 다들 눈물 콧물 쏙 빼며 김치속을 만들었다. 김치 소그룹 리더의 소개로 수업에 조인한 타마라Tamara는 내가 알기로 김치를 제대로 먹어본 적도 없었다. 상상하건데 ‘엄청 맛있는 코리안 대표 전통음식’을 만들거라는 어네스트의 개인취향 가득 섞인 소개에 단순한 호기심으로 따라왔을 터. 아마 그녀는 냄새, 맛 다 작렬하는 온갖 재료를 한데 모아 만드는 이 음식의 결과물이 대체 어떤 것일지, 티는 별로 안냈어도 속으로는 엄청 의심스러웠을 거다.

똑같은 재료로 똑같이 만들었는데도 이상하게 누구 김치속은 자박자박 윤기가 나고(더크의 김치) 누구거는 빠짝빠짝 수분부족이었다(어네스트의 김치). 참 알 수 없는 일. 속을 꽉 채운 배추는 뚜껑 없는 플라스틱 장난감 통에 그대로 안착, 뚜껑을 대신해 랩으로 인정사정 볼것 없이 꽁꽁 싸매어졌다.

후일담이다. 그날 김치통을 차 트렁크에 싣고 집으로 돌아간 어네스트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김치를 트렁크에 그대로 방치했다고 한다. 자기 김치가 마음에 안들었던 건지, 냄새 때문에 안 갖고 들어갔다가 잊어버린건지. 요리로 내어져 나온 김치만 봐오다가 김치의 네츄럴한 본모습(?)이 사뭇 다르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하긴, 상에 반찬으로, 혹은 요리가 되어 내어진 김치와, 김치통 속에 푹 퍼져있는 김치덩어리의 냄새는 가히 비교할 수가 없지. 김치 종주국 출신인 나조차도 익히려고 밖에 빼둔 김치통 옆을 지날 때면 그 냄새에 화들짝 놀라곤 하니까. 어쨌든 거의 일주일 가까이를 차 트렁크에 방치돼있던 어네스트의 김치는 가엾게도 식탁 가까이는 가보지도 못한채, 그대로 어네스트네 집 마당에 묻혀졌다고 한다.

Yi의 김치는 다행이도 잘 생존하여, 몇 주 뒤 더크 집에서 모여 김치찌개를 해먹었고, 더크의 작품은 내가 만든것 못지 않게 잘 익어 그 다음 바베큐파티에서 인기를 누렸다.

그나저나, St. Ingbert를 떠나온 이후로 자주 못 본 우리 김치 소모임 멤버들에게 오랜만에 연락이나 해봐야겠다. 코로나가 조금 잠잠해지면 이번에는 우리집에 모여 김치파티나 한 판 벌여 보자고 제안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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