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체인지, 인류의 미래를 건 챌린지

첫 경험

내게 짜릿한 신세계를 맛보여준 ‘그것’에 대해 잠시 회상해 보겠다. 날은 아직 쌀쌀했던 3월, 남편 손에 이끌려 도달한 그곳은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상크트 잉버트(St.Ingbert)의 시청광장. 겨울을 털어버리지 못한 우중충한 독일 날씨 속에 홀로 우두커니 서있던 연두색 푸드트럭. 내가 평소에 빨빨거리며 지나다니던 곳이었지만 그날 이전에는 이런게 있는지 조차 인지하지 못했던, 존재감 제로의 푸드트럭이었다. 여기서 나는 첫 경험을 했다.

가끔 난 내 식습관을 소개할 때 살짝 보태서 ‘육식동물’이라고 농담을 하곤 했다. 정말 고기만 먹는건 아니었지만 매 끼니에 고기반찬 하나 없으면 입맛이 뚝 떨어지곤 했기 때문. 아마도 고기반찬 좋아하는 울아부지의 취향을 고려한 우리집 밥상에 어릴 때부터 익숙해져서일테다. 하지만 그날은 띤군의 강추로 이름하여 비건푸드에 도전하게 됬다.

반신반의하며 맛을 본 버거. 아니 근데 웬걸, 비건이라는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깊은 패티맛과 입안을 꽉 채우는 소스+부재료들의 향연! ‘이거 뭐여??’하며 버거를 요리조리 뜯어보니 치즈에, 칠리마요소스에 있을건 다 있다. 하지만 모두 동물성 재료 없이 만든 100% 비건이라는거! 오, 이 짜릿한 신세계의 발견!

베지테리언-비건의 세력확장

그날 이후 비건은 내 식도락 레이더 타깃에 등극했다. 물론 그 푸드트럭은 내 최애 메뉴로, 그 맛에 흠뻑 매료된 나는 여기서 알바라도 구해 레시피를 배워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을 정도다.

관심이 생겨서일까. 그 때부터 비건 그리고 그의 친척뻘인 베지테리언이 그렇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독일 식당의 메뉴에는 비건과 베지테리언 메뉴가 꼭 한 두 개씩은 있다. 커피숍에도 우유대신 두유나 오트밀 밀크로 된 비건음료가 꼭 있다. 심지어 대형 프렌차이즈인 도미노피자에도 비건피자가 있다. 그것도 3종류나! 이 글을 쓰며 궁금해져서 찾아보니, 닭튀김을 전공한 KFC도 비건버거를 판다. 이름하여 켄터키 프라이드 비건!

먹거리를 넘어서 동물성 원료를 쓰지 않은 비건 화장품, 비건 패션이라는 카테고리도 등장했다. 고객에게 가장 노출되기 쉬운 마트 계산대와 서점 쇼윈도우에 당당히 자리하고 있는 채식 쿡북도 채식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잘 보여준다.

대형 프렌차이즈도 비건이다. 독일 KFC의 비건버거
독일 KFC의 캔터키 프라이드 비건버거

독일을 여행해본 분들은 눈치채셨을 수도 있겠다. 독일 음식은 고기, 감자, 고기, 감자, 감자, 고기.. 이런식이다. (아, 빵도 있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독일 빵..) 따로 안 찾아봤지만 독일 사람들의 고기 섭취량은 아마 엄청날거다. 고기 좋아하는 이분들의 식성을 생각했을때 내가 목도한 베지테리언-비건의 세력확장은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난 요기다. (뜬금포 No No..) 이게 최대한 자주, 규칙적으로 요가를 함으로써 몸과 마음을 단련하려고 노력한다는 얘기다. 수련에는 요가도 중요하지만 우리 몸을 구성할 음식을 어떤걸, 어떻게 섭취하느냐도 중요하다. 요가인으로 유명해진(?) 가수 이효리씨가 채식을 한다는 얘기를 들어봤을 거다. 나는 머리로는 알아도 실천은 못하고 있을 때, 바르셀로나에서 만난 요기 Laia의 조언으로 결단을 내리게 됬다. 수련할 때 몸이 무겁다고 하는 나에게 그녀는 채식을 권했다.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던 깊은 내공의 아우라에 이끌려, 나는 단번에 채식의 길에 뛰어들었다. 적어도 한동안은 말이다.

채식의 방정식

독일에는 지금 베지테리언(비건 포함) 인구가 약 8백만명 정도라고 한다. 독일 전체 인구의 10%! 그리고 계속 느는 추세다. 그 분위기를 마트에서도 느낄 수 있는데, 비건전용 코너가 생기는가 하면 우리집 앞 대형 마트에는 예전엔 숨은 듯 구석에 있던 비건상품들이 어느날 부터인가 마트 복도 전면에 떡하니 자리잡았다.

채식을 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거다. 나는 요가를 더 집중해서 하기 위해, 그것 이전에는 서른이 넘어 재발한 빌어먹을 아토피와 전쟁을 치르며 한동안 채식 했다. 독일에서는 많은 이들이 동물을 도살하는게 싫어서 채식을 선택한다. 그리고 미뤄 짐작해보는 거지만 최근에는 우리의 삶의 터전인 지구를 지킨다는 막중한 책임의식 아래 채식을 선택하는 이도 적지 않을 거다.

고기 안먹어 지구를 지킨다니, 뭔소린가 하시겠다. 채식과 지구보존을 연결하는 키워드는 바로 ‘기후변화’다.

기후변화. 정말 많이 듣지만 그 심각성은 이상하게 잘 안 와닿는 주제. 그도 그럴 것이, 기후변화의 키워드인 1.5도, 그러니까 지구 온도가 1.5도만 더 올라가면 큰일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게 뭐 별거인가 싶기 때문이다. 28도에서 29.5도로 올라가는거 정도로 1.5도 상승을 바라보면 그래 보일 수 밖에! 이건 심각한 정보전달의 오류이자 무서운 인식의 함정이다.

우선 이 1.5도는 1년간의 지구 평균온도를 말한다. 매일매일 바뀌는 기온이 아니다. 2만년 전 빙하기부터 간빙기가 되기까지 1만년 동안 지구 평균온도가 딱 4도가 올랐단다. 빙하기와 지금과 같은 간빙기의 지구 평균온도 차이가 고작 4도! 1.5도 상승이 얼마나 큰건지 감이 오시는가? 과학자들은 데이터를 통해 단호한 어조로 말한다. 인간이 생존 가능한 기온 수준은 지금보다 1.5도 높은 수준 까지라고. 그 이상 높아지면? 지구에 몸 담고 있는 모든 생명체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더 뜨겁고 더 추워진 지구에서 자연재해와 식량 고갈 속 코로나같은 신종 팬데믹과 싸우며 익스트림 서바이벌을 하게되는 것이다.

기후변화와 지구온도를 그래픽화한 사진. 2000년 전후로 급격히 온도가 올라간걸 알 수 있다.
지난 150년간의 지구 평균기온이 변화한 모습을 그래픽화한 사진이다. 한줄한줄이 한해의 평균 온도를 가리키는데, 2000년 전후로 지구가 급격히 뜨거워진걸 알 수 있다. (출처: tvN의 월간기획 <미래수업>)

SF 재난영화를 연상케하는 이러한 시나리오는 멀리 있지 않다. 인간이 지금같은 수준으로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면 7.5년 만에 지구 온도를 1.5도 이상 올리고도 남는다는 전망이다. 7.5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당장 내일 그런 일이 닥친다는 얘기다.

그래서, 꽃(등심)보다 채식

30년동안 대기를 연구해온 조천호 박사는 현재 인류가 하는 짓을 젠가게임에 비유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하며 블럭을 하나, 둘씩 빼다가 어느 순간 전체가 와르르 무너지는.

그거 아시는가? 지구상에 존재하는 척추동물 중 30%는 인간, 67%는 인간이 잡아먹으려고 기르는 가축, 야생은 3%도 안된다는 사실을. 우리가 그만큼 고기를 어마어마하게 먹고 있다는 얘기다. 이 가축을 먹이고, 키우고, 운송하고 하는게 다 화석연료로 이뤄진다. 소나 양 같은 반추동물이 내뿜는 메탄가스(트림)도 무시할 수 없다. 이 고기산업이 방출하는 메탄가스가 인간의 활동으로 생산되는 메탄가스의 37%를 차지한다고 하니, 앞으로 7.5년 이상 불바다 지구가 아닌 정상 지구에서 살기 위해 채식을 선택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는가?

예선전은 코로나19. 코로나를 이긴 다음 본선은? 코로나보다 강력한 기후변화! (출처: 이코노미스트)

몸과 마음이 가볍고 날렵했던 날들을 기억하며

바르셀로나를 갔다 와서 본격적으로 육고기를 끊은지 한 달, 몸에는 벌써 분명한 변화가 나타났다. 하복부에서 엉덩이, 다리로 이어지는 하반신이 부쩍 가벼워졌다는 것! 아랫배가 쏙 들어가니 몸이 척척 잘 접히고 신기하게도 골반 관절까지 부드러워졌다. 일주일에 4~5일 요가를 하니 이러한 몸의 변화가 더 뚜렷하게 감지됐다.

이 시기에 내가 고기 대신 가까이한 메뉴는 바로 샐러드다. 샐러드는 비빔밥, 김밥과 같은 부류로, 넣고 싶은건 뭐든 넣을 수 있는 변신의 귀재다. 덕분에 취향과 그날그날의 입맛에 따라 재료를 바꿔가며 오랫 동안 질리지 않고 먹을 수 있다. 육고기를 대신해 병아리콩, 치즈, 생선구이, 두부, 계란 등을 먹고싶은 만큼 듬뿍 넣어 단백질원으로 삼았다.

우리집 주방을 책임지는 내 의지에 따라 채식에 동참하게된 띤군의 피드백도 세상 긍정적이었다. 소화가 잘되니 속도 편하고 몸도 가벼워졌다는 것!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시도는 오래가지 못했다. 그해 연말 멕시코에 있는 시댁에서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보내면서 잔칫상에 올라온 화려한 고기메뉴들을 거부하지 못했던 것이다. 한번 기가 꺾인 채식에 대한 의지는 그 이후로 지금까지 계속 절름발이 상태였다.

그러다 최근 어무이 정보통을 통해 <미래수업>이라는 프로를 보게 되었다. 그 방송에 인터넷 방청객으로 출연한 한 초등학생은 기후변화에 일조하기 위해 1년 전부터 모든 육고기를 끊었다고 한다. 울컥! 어른도 하기 어려운걸 한창 잘 먹고 커야할 나이에 솔선수범하여 하고 있다니! 그 아이의 결연함과 희생정신에 뜨거운 감동이 목구멍을 타고 솟구쳤다. 방송에 출연한 독일인 다니엘씨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거렸다.

이 벅찬 감동을 뒤따른건 부끄러움 + 양심의 가책이었다. 고기산업과 기후변화의 관계에 대해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눈 한쪽 슬쩍 감고 고기 섭취를 늘렸기 때문이다. ‘내가 굳이 참여 안해도 어떻게든 되겠지’하는 못난 생각과 먹던것은 계속 먹게 되고, 안 먹으면 허전함을 느끼는 ‘습관의 관성’ 때문이리라! 그리하여 약발 다된 건전지를 새것으로 교체하는 마음으로 동기부여 만땅 충전해 다시 한 번 ‘고기 멀리하기’에 도전한다.

그러고보니 여름이다. 여름은 순환의 계절이고, 순환은 비움을 뜻한다. 땅의 기운이 돌고 돌아 풀잎이 자라고 꽃이 피는 것 처럼, 우리 몸도 여름의 기운으로 활발해진 순환을 통해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기 좋은 때다. 마침 무더위에 입맛도 덜 하겠다, 이보다 더 좋은 타이밍이 있을까?

고기가 밥상에 올라가는게 일상이 아닌, 아주 가끔 일어나는 특별한 이벤트로 만드는 것! 그것이 내가 앞으로 할, 나를 위한, 그리고 인류의 미래를 위한 작지만 큰 도전이다.

이 글을 쓰는데 영감을 준 멋진 글과 영상을 공유합니다!
feat. 기후변화와 채식에 대해 더 알아보기

🥑 이당근님의 <블록버스터의 고단함 – 채소와 최선 편>, 포스트 바로가기

🍒 ‘씨리얼’에서 제작한 <기후변화, 어떻게 하면 되냐고요? (QnA)> 유투브 영상. 바로가기
🍒 ‘요즘 것들의 사생활’에서 제작한 <채식하면 뭐가 좋냐고?> 유투브 영상 바로가기
🍒 tvN 월간기획 <미래수업> 제 4화

8 Comments

  1. MarieMarie H

    푸드트럭에서 파는 비건버거 진짜 맛있겠다… 🍔 😋 비건 푸드 종류가 다양해져서 너무 좋아.
    몇년 전 한참 베지테리언 식단 할때.. 몸 가볍고 좋았는데, 나도 그 기분 알징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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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haparritaLee

      웅! 독일 사는 덕을 그렇게 보네요! 한국에서는 단독 메뉴는 고사하고 아직도 매번 재료확인, 성분표확인을 해야만 하는데 말이죠~ 몸에도 좋을 뿐더러, 이젠 정말 생존하려면 해야한다는 생각으로ㅠ 마음 다잡고 고기 멀리하기 해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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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MM

    저도 국제결혼해서 독일살고 있는데요. 저희 남편도 얼마전부터 지구를 위해 본인의 최애 우유를 버리고 비건우유(오트밀우유, 헤이즐넛우유)로 갈아탔어요 그렇다고 비건이나 베지테리언으로 선언한건 아니지만..지구를 포함한 모두의 생존을 위해선 육식을 좀 줄이는게 맞다고 봐요. 저도 건강상의 이유로 육식을 멀리하는 중인데..시작이 어렵지 익숙해지니 고기 좀 덜 먹어도 사는데 아무 지장없더라고요..몸이 가벼워지는건 덤이고..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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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LARA A.

    몸과 마음 뿐만 아니라 환경까지 생각하는 모습이 너무 예쁜거 같아! 나도 요리할때 조금더 건강과 환경을 신경 써봐야겠다! 지금까지 별 생각없이 살았는데, 너무 중요한 문제 같아 🙂 우리 아프지 말고 건강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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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Juju

    안그래도 기후 변화로인해 한국의 올 여름 물난리를 보면서 경각심이 들긴 하네요. 오늘만 사는 게 아닌 이상 가까운 미래에 뭔가가 닥칠지도 모른단 불안감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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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이시백

    코로나19는 여러모로 분기점이 된다고 합니다. 생태문제와 지구환경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는 지점에서 시의적이고 소중한 목소리가 담긴 글에 감사드려요.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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